▲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A씨는 2017년 6월 삼성전자 평택공장 사내하청업체에 입사해 유지·보수(PM) 엔지니어로 일하기 시작했다. 당시 막 가동하기 시작한 평택공장은 대부분 자동화가 이뤄져 다른 공장에 비해 클린룸 안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A씨는 클린룸 내부에 있는 디퓨전(확산) 공정설비 안으로 직접 들어가 작업을 수행했다. 설비 내부에 축적된 각종 화학적 부산물을 제거·세척해야 했기 때문이다. 작업공간에서는 늘 달콤한 초콜릿 냄새나 텁텁한 냄새가 났다. 보안경·마스크 등 보호구를 온전히 착용한 채로 일하기도 어려웠다. 설비 내부는 워낙 고온(200도)인 데다 작업시간이 늦어져 압박을 받았던 터다. 하루에 8시간씩 4조3교대로 6일 일하고 이틀 쉬었다. 꼬박 4년 가까이 일한 2021년 2월, A씨는 불과 만 30세 나이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외주업체 입사 4년, 30세에 파키슨병”
반올림·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실태조사

지난 10여년간 반도체 공장 설비 자동화가 이뤄지면서 유해물질에 직접 노출될 가능성도 낮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설비 가까이에서 일하는 유지·보수 노동자들은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특히 삼성전자 반도체 칩공장에서는 해당 업무를 대부분 외주화해 하청노동자들에게 유해물질 노출 위험이 전가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3일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한 ‘삼성 전자계열사 노동안전보건실태 조사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동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 화학물질 노출군 비율, 화학물질 냄새에 노출되는 비율, 냄새로 인한 두통·실신 등 경험, 화학물질이 피부에 직접 노출된 경험 같은 대부분 항목에서 설비 유지·보수직군일수록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는 지난해 8월8일~9월15일 온라인으로 이뤄졌다. 설문에 응답한 삼성전자 노동자 1천172명 중 761명의 답변을 분석했다. 여러 사업장에서 일한 10~25년 경력의 설비 엔지니어 등 6명에 대한 면접조사도 진행했다. 금속노조·전국삼성전자노조 등은 삼성 전자계열사 노조연대를 구성한 뒤 지난해 7월 ‘3무 삼성(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죽지 않는 삼성 만들기)’ 운동을 시작했다. 이번 실태조사도 그 일환으로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조사·연구에 참여했다.

설비 자동화 → 유지·보수 노동 증가
유지·보수직군 5명 중 1명 피부질환 경험

화학물질 노출군을 직군별로 분석했을 때 생산직군과 설비 유지·보수직군이 각각 82%, 95.4%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화학물질 냄새에 노출되는 비율도 설비 유지·보수직군이 58%로 가장 높았고, 생산직(48.7%), 사무직 등 기타직군(42.9%), 연구개발직(31.9%) 순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를 분석한 연구팀은 “냄새는 화학물질 노출의 가장 직접적인 증거”라며 “자동화로 인해 설비 차폐와 설비 내부 음압 유지 등으로 일상적인 화학물질 냄새가 많이 감소됐다고 해도 설비 차폐를 깨고 작업해야 하는 설비 유지·보수 및 고장수리 작업 과정에서는 화학물질 노출 위험이 여전히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유지·보수 직군 10명 중 3명(28.7%)은 냄새로 인한 두통·어지러움·실신 등의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화학물질 피부 노출에 따른 직·간접적 피부질환 경험 또한 20.6%나 됐다. 연구팀은 “반도체 전자산업에는 발암물질 등 직업병을 유발하는 독성물질만이 아니라 피부노출시 사망에 이르는 물질도 대량 사용되기 때문에 설비 유지·보수 작업시 피부에 화학물질이 노출되는 공정 혹은 작업 등에 대한 조사와 개선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화학물질 노출 위험이 설비 유지·보수직군에 집중된 것을 넘어, 해당 업무를 외주화함으로써 위험이 하청노동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반올림 설명을 종합하면 2010년 이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설비 자동화가 진척되면서 오퍼레이터가 줄어들고 설비 유지·보수 직군은 늘어나는 등 노동인력 구성도 달라졌다. 연구팀은 “설비 자동화는 설비 유지·보수 노동의 증가를 의미한다”며 “그런데 삼성전자 반도체 칩공장에서 해당 업무 대부분이 설비업체에 외주화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10년 사이 삼성전자의 간접고용 비중은 늘어났다. 고용노동부 고용형태공시 결과를 분석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슈페이퍼를 보면 제도 시행 첫해인 2014년 삼성전자는 15만5천335명 중 간접고용 노동자가 3만886명이었는데, 2023년 12만3천570명 중 간접고용 2만6천4명으로 비중이 19.9%에서 21.3%로 증가했다. 세부 직군까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간접고용 증가가 설비 유지·보수 업무 증가와 무관치 않다는 게 이번 실태조사 연구진의 분석이다.

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는 “자동화로 인해 사람 대신 기계가 공정을 수행하면서 작업현장이 안전해졌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데 설비 유지·보수 노동자는 여기서 제외돼 있다”며 “해당 업무에 대한 외주화가 가속화되고 있는데 물량 압박과 속도전에 내몰려 더 취약해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응답자 27% 화학물질 유해성 ‘잘 모른다’

차폐된 설비를 오픈하는 유지·보수 노동자뿐만 아니라 해당 공간에 함께 있는 다른 직군 노동자도 유해물질 노출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연구진은 화학물질 노출과 관련해 △설비를 오픈하는 일이 있는 노동자 △오픈된 설비가 있는 공간에 머무는 경우가 있는 노동자 △직무상 해당 없는 노동자로 나눠서 조사 결과를 확인했다. 직접 오픈하는 경우 응답자 15.4%가 심한 노출을 경험한다고 답했고, 해당 설비가 있는 공간에 머무르는 노동자들은 10.9%로 조사됐다. 피부 노출도 마찬가지다. 설비를 오픈하는 일을 하는 응답자 중 31.9%가, 오픈된 설비가 있는 공간에 머무는 경우가 있는 응답자 22.5%가 직접 피부 노출을 경험했다. 연구팀은 “설비 유지·보수 노동자만이 아니라 유지·보수 작업 중 해당 공간에 머무는 노동자를 위한 안전보건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유해물질 교육 등 정보 제공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업장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과 유해성에 대해 10명 중 3명(27%)은 유해성이 있는지 모르거나 유해하다는 정도만 알뿐 구체적인 내용은 모른다고 답했다. 안전보건교육에서도 화학물질과 유해성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거나 ‘다루지 않는다’고 답한 경우가 15.7%였다. 사용 화학물질의 라벨(경고표지)에 표시된 유해성을 인지하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혹은 ‘거의 모른다’고 답한 응답자가 4명 중 1명(25%)이었다.

면접조사에 참여한 삼성전자 노동자 A씨는 “웨이퍼 막을 제거하는 공정을 진행하는 FA 분석실에서 사용하는 게 발열질산 에칭가스인데, 보호장비 없이 출입한다”며 “배기(장치)가 충분히 돼 있다고 하지만 리트머스 시험지를 올려놓으면 일주일 만에 색이 변할 정도”라고 증언했다. 또 다른 노동자 B씨는 “유지·보수시 사용하는 이동식 국소배기(장치)가 한계가 있어서 설비마다 상단에 설치해 달라고 요구했는데 거부당했다”고 말했다.

보호구 지급 등 안전조치도 구멍이 뚫려 있었다. 화학물질 취급 작업시 개인 보호장구를 매뉴얼대로 착용하지 않는다고 답한 경우가 10명 중 3명(31.2%)이나 됐다. 그 이유로는 ‘작업 효율이 떨어져서’가 49.2%로 절반에 가까웠고, ‘긴급한 작업 때문’이 28.8%로 뒤를 이었다. ‘보호장구가 없어서’(8.5%)나 ‘관리부실로 오염돼 있어서’(2.1%)라고 답한 응답자가 10명 중 1명 꼴이었다.


 어고은 기자 
 


출처 : 매일노동뉴스
[삼성에 빼앗긴 삶]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짙어진 ‘위험의 외주화’ 그림자 < 노동안전 < 안전과 건강 < 기사본문 - 매일노동뉴스 (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