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회사 근무 중 '피부염'... 당신의 잘못이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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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회사 근무 중 '피부염'... 당신의 잘못이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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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회사 근무 중 '피부염'... 당신의 잘못이 아니었어요

[유노무사 상담일기] 당신은 어떤 일을 하십니까? 

등록 2023.03.22 14:36   수정 2023.03.22 14:38 


얼마 전 라디오에서 익숙하지만 낯선 말을 접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뭘 잘못 먹었나? 요즘 너무 과음했나? 과연 그럴까요!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일터, 정확한 진료를 위해선 직업을 묻고 말해야 합니다. 
직업병 안심센터는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다양한 사례를 데이터로 관리해 보다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갑니다. (후략)" 

'안전한 일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건가'라며 혼잣말을 하던 중 "직업병 안심센터, 고용노동부와 함께합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고용노동부라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의심이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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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하는 사람에게 질병이 생겼을 때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유해환경에 노출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 pixabay 

화학물질 노출에 의한 알레르기성 접촉피부염, 개인 탓이 아닙니다 

2010년 오빠의 문제로 어렵사리 소개의 소개를 거쳐 사무실을 찾은 사람이 있었다. 재해자는 2005년 OO전자에 입사했고 6개월도 안 되어 알레르기성 접촉피부염을 진단받고 치료를 
받다가,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그해 퇴사했다. 

재해자는 리모컨 모듈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에폭시 수지, 이형제 등을 취급하며 고열의 오븐에서 경화시키는 공정에서 일했다. 에폭시 취급 시 마스크, 방진복, 불침투성 보호 장갑을 
착용했지만, 에폭시 룸을 나오면 일반 목장갑을 착용하고 일을 했다. 작업 중 땀이 나면 에폭시가 묻은 목장갑으로 얼굴과 목 등을 닦으면서 일했다. 

OO전자를 나오고 다른 일을 하자 증상은 호전됐다. 지역에서 큰 공장이었고 임금 수준도 높은 편이어서 재해자는 2007년 재입사했다. 그리고 한 달여 후 다시 상태가 악화되자 다른 
공정으로 옮긴 후 2009년 퇴사했다.

재입사 후 나타난 고름, 물집, 갈라짐 등의 증상은 손이나 안면부 등 외부에 노출되는 부위에서 특히 심했다. 당시 찾았던 병원에서도 알레르기성 접촉피부염 진단을 받았다.

재해자는 단지 성인성 아토피 피부염이 심한 상태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연고를 바르거나 면역력을 높이는데 많은 돈을 썼다. 그렇게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치료를 진행하다 산재 
신청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첫 질문은 "5~6곳의 병원에 다녔는데 무슨 일을 하는지 아무도 안 묻던가요?"였다. 재해자의 작업공정이나 취급한 물질을 살펴보면, 알레르기성 
접촉 피부염과 에폭시의 관련성을 의심해 볼 수 있었을 텐데 지난 4년 동안의 고생이 안타까웠다.

그나마 회사 측에 자료를 요청해서 물질안전보건자료와 작업환경측정 결과를 받아 볼 수 있었다. 작업환경측정 결과 아래와 같았다.
 
"현장 내 작업자가 적정 개인 보호구를 착용하고 작업에 임하고 있어 실 노출 정도는 더 낮을 것으로 사료되나 (중략) 작업자는 현재와 같이 양질의 적정 개인 보호구의 습관적인 
착용과 함께 설치 가동 중인 집진시설을 주기적으로 점검하여 효율 저하를 억제시키고 정기적인 특수건강진단을 실시하여 건강장해를 미연에 예방하시기 바랍니다."

에폭시 수지는 알레르기 접촉성 피부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화학물질이며, 회사도 이를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회사는 재해자와 유사한 질병을 앓았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답변했다. 재해자는 본인과 유사한 질병이 있는 경우 모두 퇴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굳이 진실싸움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러한 반응에 어이가 없었다.

아무튼 재해자의 상병은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었다. 사건 진행 과정에서 업무 관련성 소견을 받았을 때, 재해자의 신체적 특성상 에폭시 등 화학물질에 대한 반응도가 월등하게 
높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고, 본인의 증상이 왜 그렇게 극심했는지 의문도 해소될 수 있었다.

재해자는 나중에 요양비 청구를 위해 그동안 치료받았던 모든 병원을 돌아다니며, 의사에게 "그때 왜 무슨 일을 하는지 묻지 않으셨나요?"라고 되물었다.

일상에서 질문하고, 요구하며 안전한 일터를 만들자

2017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간한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프롤로그는 "당신은 어떤 일을 하십니까?"로 시작한다.

김재광 당시 소장은 "비단 의사만이 아니라 우리는 언제나 질문해야 합니다. 궁금해야 합니다. 나는, 당신은 무슨 일을 합니까? (중략) 건강한 삶을 위해 우리에겐 어떤 일터가 필요
한가요"라고 마무리한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던 멘트가 익숙했던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낯설었던 건 노동부의 광고였기 때문이다. 직업병은 특정한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일상에서 
안전보건에 대해 늘 의심하고 주의를 기울일 수 있도록 개선책을 찾고 요구하고, 일터를 변화시켜야 한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니 노동부의 직업병 안심센터가 
제대로 운영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후원회원이자 공인노무사이신 유상철님이 작성하였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잡지 일터 3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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